‘마카오 카지노 도박왕’ 사후 카지노 제국 누구 품으로?

지난 5월 26일, 마카오의 리스보아호텔 앞에 조기(弔旗)가 내걸렸다. 이날 세상을 떠난 ‘세기의 도박왕’ 스탠리 호(何鴻燊·1921~2020)를 추모하는 조기였다. 향년 98세로 작고한 스탠리 호는 중국 변방의 한적한 어촌 마카오를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맞먹는 세계 최대 카지노 도시로 키워낸 기업가다. 태평양전쟁 와중인 1941년 홍콩 함락과 함께 마카오로 이주한 스탠리 호는 식료품과 사치품을 중국 대륙으로 밀수해 종잣돈을 모았고, 1962년 마카오를 지배하던 포르투갈 식민정부로부터 40년 도박업 독점권을 얻었다.

스탠리 호의 마카오 카지노 독점은 1999년 마카오 반환 이후에도 2002년까지 유지됐다. 작고하기 2년 전인 2018년까지도 개인기업인 ‘STDM’을 통해 마카오 최대 카지노 기업 ‘SJM’을 지배해 왔다. SJM은 스탠리 호 제국의 발판이 된 리스보아 카지노를 비롯해 줄잡아 수십 개의 카지노와 호텔, 경마장을 소유하고 있다. 홍콩과 마카오를 연결하는 페리와 헬기 등도 운영해 왔다. 자연히 스탠리 호 사후 마카오 도박업 판도 역시 커다란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팬시 호, 데이지 호, 로렌스 호

스탠리 호 사후 카지노 제국이 누구 손에 넘어갈지가 우선 관심거리다. 스탠리 호는 4명의 부인으로부터 모두 16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항간에는 17명으로 알려졌지만, 유족 측은 16명이라고 공식 확인한 바 있다. 스탠리 호의 자녀와 부인들은 그가 세상을 뜨기 전부터 카지노 사업에 깊이 관여해 왔다. 스탠리 호 생전에도 150억달러(약 18조원)에 달하는 유산 상속권을 두고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일단 스탠리 호 사후 카지노 제국의 경영권은 둘째 부인 루시나 람(藍瓊纓) 소생의 다섯 자녀들 손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스탠리 호의 장례식 동안 3명의 생존 미망인(첫째 부인은 사망) 등 전 유가족을 대표해 스탠리 호의 임종을 발표한 사람은 스탠리 호와 둘째 부인 사이에서 얻은 첫째 딸 팬시 호(何超瓊)였다. 팬시 호는 마카오 당국의 허가를 받은 6개 카지노 사업자 가운데 ‘MGM차이나’를 실질적으로 설립하고 이끌어온 마카오 카지노 업계의 여걸(女傑)이다. 이에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은 일제히 팬시 호를 스탠리 호 제국의 사실상 후계자로 지목했다.

팬시 호는 2002년 스탠리 호의 40년간 마카오 카지노 독점권이 종료됨과 동시에 외자(外資)계 카지노 기업들이 마카오에 진출했을 때, 미국계 MGM과 합작해 카지노 허가를 따내면서 스탠리 호 제국의 외연을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MGM차이나를 실질적으로 이끌면서 마카오반도의 MGM마카오와 코타이스트립의 MGM코타이 등 2곳의 카지노 경영을 주도해 왔다.

팬시 호는 스탠리 호 제국의 핵심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홍콩의 상장기업 순탁(信德)그룹 역시 자신의 지배하에 두고 있다. 순탁그룹은 홍콩섬과 마카오를 오가는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페리(터보제트)와 헬기를 띄우는 ‘홍콩·마카오 페리터미널’이 있는 순탁센터를 비롯해 마카오타워 등 홍콩과 마카오, 중국 대륙에 산재한 부동산을 관리 운영하는 기업이다. SJM 산하 카지노 호텔의 운영과 관리는 대부분 팬시 호의 순탁그룹이 독점관리하고 있다.

리스보아 카지노 등을 거느린 마카오 최대 카지노 기업 SJM 역시 공식적으로는 둘째 부인 소생의 둘째 딸 데이지 호(何超鳳)가 이끌고 있다. 데이지 호는 2018년 스탠리 호가 일선에서 퇴진하면서 SJM의 회장 자리를 넘겨받았다. 마카오 법은 단일 카지노 기업의 5% 이상 지분을 가진 자가 다른 기업의 지분을 5% 이상 소유하지 못하게 제한한다. 이에 MGM차이나의 지분을 20% 이상 가지고 있는 팬시 호가 동생 데이지 호를 앞세워 SJM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동복 자매인 팬시 호와 데이지 호는 스탠리 호의 생전인 2011년, 넷째 부인 안젤라 렁과 유산 분쟁이 벌어졌을 때 동맹 관계를 형성해 함께 맞선 바 있다. 팬시 호와 데이지 호는 지난해에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헨리 폭 재단’과도 동맹 관계를 구축했다. 작고한 ‘붉은 자본가’ 헨리 폭(훠잉동)은 스탠리 호가 마카오 도박 독점권을 따낼 때 파트너였다. 현재 헨리 폭의 장남인 티모시 폭(훠전팅)이 이끌고 있다. 티모시 폭은 SJM에서 데이지 호 아래 공동대표로 등재돼 있다.

둘째 부인 소생의 아들 로렌스 호(何猷龍)도 ‘멜코’라는 독자 브랜드로 스탠리 호 제국의 판도를 넓혀왔다. 로렌스 호는 첫째 부인 소생의 장남 로버트 호가 1981년 교통사고로 일찍 세상을 뜨면서 사실상 가문의 장남 역할을 해왔다. 로렌스 호는 일찍이 ‘멜코’로 독립해 호주의 카지노 기업인 ‘크라운’과 합작으로, 코타이스트립 개척에 주력해왔다. 마카오 코타이섬과 타이파섬 사이 바다를 매립해 조성한 코타이스트립은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을 모방해 만든 카지노 콤플렉스다.

‘멜코’는 코타이스트립의 ‘시티 오브 드림’을 비롯해 ‘스튜디오 시티’ ‘알티라’ 등 모두 4곳의 카지노를 운영 중이다. 스탠리 호가 주로 운영했던 홍콩 영화에 나올 법한 구식 카지노가 아니라 라스베이거스식 카지노를 도입해 바로 옆의 베네치안마카오, 샌즈코타이센트럴, MGM코타이, 윈팰리스 등 외자계 카지노와 정면승부를 벌이고 있다. 멜코는 필리핀에서도 2015년부터 ‘시티 오브 드림 마닐라’를 운영 중이다. 사실상 둘째 부인 소생 자녀들이 마카오 도박업을 이끄는 셈이다.

코로나19로 카지노 수입 급락

스탠리 호 자녀들의 가업 승계가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마카오 카지노 업계는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상태다. 마카오 카지노 감독당국인 ‘도박감찰협조국(DICJ)’에 따르면, 마카오의 도박업 수입은 지난 5월 기준 17억6400만파타카(약 2706억원)로 전년동월 대비 93.2% 급감했다. 그나마 지난 4월 7억5400만파타카(약 1156억원)로 전년대비 96.8% 감소했던 것보다는 나아진 수치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바로 옆 홍콩 역시 정정불안이 계속되고 있어 당분간 회복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마카오 시장 자체도 거듭된 신규 카지노 개장으로 ‘레드오션’으로 바뀐 상태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샌즈그룹이 베네치안마카오, 샌즈코타이센트럴, 파리지앵 등 5곳의 카지노를 운영하는 것을 비롯, 미국 윈리조트도 윈마카오와 윈팰리스 2곳을 운영 중이다. 홍콩 자화(嘉華)그룹 뤼즈허(呂志和) 회장이 이끄는 갤럭시카지노도 갤럭시, 브로드웨이, 스타월드, 왈도, 리오, 프레지던트 등 6개 카지노를 운영 중이다. 치열한 경쟁에 한때 100%에 달했던 SJM의 시장점유율은 15% 내외로 급감한 상태다.

외자계 카지노에 맞서 SJM 측이 코타이스트립에 개장할 예정이던 ‘그랜드 리스보아 팰리스’ 역시 앞날이 불투명하다. 그랜드 리스보아 팰리스는 코타이스트립에서 존재감이 미미하던 SJM이 약 50억달러(약 6조원)를 투자해 신축한 초호화 카지노 호텔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개장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얘기가 업계에서 흘러나온다. 이에 SJM 측은 “그랜드 리스보아 팰리스는 2019년 말 완공했고, 필수적인 영업허가를 취득해 오는 2020년 하반기에 개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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